2026/08/12 13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21화 —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몇 달 뒤.점심시간의 Amore di Pasta 앞에는자연스럽게 줄이 생겼다.“볼로네제 두 개!”“알프레도 하나요!”“치즈 많이 주세요!”트레일러 안은 바빴다.나는 파스타를 담았고알베르또는 손님들과 이야기했다.이제 이곳은 정말 가게가 되어 있었다.영업이 끝난 뒤.우리는 나란히 앉아남은 볼로네제를 먹었다.알베르또가 말했다.“처음보다 맛있다.”“당연하죠.”“내가 많이 도왔잖아.”“뭘 했는데요?”그가 생각했다.“…치즈?”나는 웃었다.선반 한쪽에는노마의 낡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그 옆에는 새 노트가 한 권 있었다.내가 쓰기 시작한 레시피 노트였다.알베르또가 물었다.“제목 정했어?”“아직요.”“내가 지어줄까?”“싫어요.”“왜?”“Amore 같은 거 넣을 거잖아요.”그가 웃었다.“사랑이 뭐가 어때서?”나는 대답하지..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20화 — 우리의 맛

다음 날 아침.나는 평소보다 일찍 트레일러에 나왔다.볼로네제를 만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노마의 맛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토마토를 조금 줄이고,샐러리를 더 잘게 썰고,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천천히 끓였다.노마의 레시피에서 시작했지만이제는 조금 다른 음식이었다.알베르또가 들어왔다.오늘은 밝은 하늘색 반팔 셔츠였다.“좋은 냄새.”나는 파스타 한 접시를 내밀었다.“먹어봐요.”그가 한입 먹었다.그리고 말했다.“엄마 거랑 다르네.”“많이요?”“응.”나는 조금 긴장했다.알베르또가 다시 한입 먹었다.“근데 이게 더 좋아.”“정말요?”“응.”“왜요?”그가 잠시 생각했다.“이건 엄마 음식이 아니니까.”나는 그를 바라봤다.“그럼 누구 음식인데요?”알베르또가 웃었다.“우리 거.”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그날 우리..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9화 — 오지 않은 내일

며칠 뒤.알베르또가 노트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손을 멈췄다.노마가 미국에 온 뒤 적은 기록이었다.그리고 한 문장이 있었다.Alberto oggi non ha mangiato.Domani gli preparo quello che gli piace.알베르또가 천천히 번역했다.“알베르또가 오늘 밥을 먹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줄.“내일은 그 애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줘야겠다.”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다음은요?”내가 물었다.알베르또가 페이지를 넘겼다.아무것도 없었다.“그게 마지막이야.”잠시 후 그가 말했다.“다음 날 엄마가 병원에 갔어.”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집에 못 돌아왔어.”알베르또는 노트를 내려놓았다.“나 그날 엄마한테 화냈던 것 같아.”“왜요?”“기억이 안 나.”그가 웃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8화 — 다시 배가 고팠던 날

노트의 다음 페이지에는볼로네제 이야기가 있었다.어느 날 카를로는오랫동안 소스를 끓였다.양파와 당근,잘게 다진 샐러리,쇠고기와 토마토.집 안에 냄새가 가득 찼다.노마는 처음으로스스로 주방에 들어갔다.카를로는 아무 말 없이작은 그릇에 파스타를 담아주었다.노마는 한입을 먹었다.그리고 또 한입.그날 처음으로그릇을 다 비웠다.노트 아래에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Quel giorno ho avuto di nuovo fame.알베르또가 읽었다.“그날 나는… 다시 배가 고파졌다.”그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그러다 웃듯 말했다.“이게 엄마 볼로네제의 시작이었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가 그토록 되살리려고 했던 맛은유명한 셰프의 비법도,완벽한 레시피도 아니었다.한 아이가 다시 먹기 시작했던 음식이었다.알베르또가 ..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7화 — 먹지 않던 아이

노마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다.그 뒤로 거의 먹지 않았다고 했다.식탁에도 앉지 않았고,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줄었다.알베르또가 노트를 읽다가 말했다.“엄마가 이런 얘기 한 적 있었어.”“그래요?”“응. 근데…”그가 잠시 멈췄다.“제대로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그 시절 노마 곁에 있던 사람이 카를로였다.집안의 셰프였던 그는노마에게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매일 작은 접시 하나를그녀 곁에 놓았을 뿐이었다.어느 날은 수프.어느 날은 빵.또 어느 날은 파스타.노마는 먹지 않았다.그래도 카를로는 다음 날다시 음식을 가져왔다.그러던 어느 날,노마가 수프를 한 숟가락 먹었다.다음 날에는 두 숟가락.며칠 뒤에는 빵 한 조각.알베르또가 조용히 말했다.“엄마가 음식 좋아하게 된 게…”나는 그의 말을 이어주었다.“카를로..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6화 — 카를로

다음 날.알베르또는 평소처럼 왔다.나도 평소처럼 인사했다.“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어제 일은 둘 다 꺼내지 않았다.그게 우리다운 화해였다.영업이 끝난 뒤알베르또가 노마의 노트를 펼쳤다.그러다 페이지 사이에서낡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오래된 이탈리아어 문장 아래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Carlo.“카를로?”내가 물었다.알베르또가 한동안 이름을 바라봤다.“기억나.”“누구예요?”“엄마가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셰프.”노트에는 카를로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했다.수프.빵.파스타.그리고 볼로네제.그런데 음식 이름 옆에는이상하게도 날짜가 적혀 있었다.“레시피 노트인데 왜 날짜가 있죠?”알베르또도 고개를 갸웃했다.페이지를 몇 장 더 넘기던 그가 멈췄다.“여기.”짧은 문장이 있었다.Quel giorno h..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5화 — 아무한테나 그러지 마요

며칠 뒤.점심시간이면 서비스 창 앞에제법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알베르또는 신이 났다.특히 손님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오늘도 볼로네제?”“제가 지난번에 뭐 먹었는지 기억해요?”젊은 여자 손님이 웃으며 물었다.알베르또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당연하죠. 예쁜 손님은 기억합니다.”여자가 웃었다.나도 처음에는 웃었다.알베르또다운 말이었다.그런데 다음 손님에게도 비슷했다.“오늘 머리 바꿨죠?”“어머, 알아봤어요?”“그걸 어떻게 몰라요.”나는 파스타를 담다가 그를 한번 봤다.그다음 여자에게도,그다음 여자에게도.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손님이 뜸해졌을 때 내가 물었다.“모든 여자한테 그렇게 말해요?”“어떻게?”정말 모르는 얼굴이었다.“예쁘다, 기억한다, 머리가 달라졌다.”“좋아하잖아.”“누가요?”“여자들이.”너..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4화 — 다시 찾아온 손님

다음 날 점심.어제의 그 여자가 정말 다시 왔다.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제가 말한 곳이 여기예요.”옆에는 친구 한 명이 서 있었다.알베르또가 나를 슬쩍 보며 웃었다.첫 단골이었다.“어제 먹은 걸로 두 개 주세요.”나는 볼로네제를 준비했다.여자가 친구에게 말했다.“먹어봐. 내가 왜 다시 왔는지 알 거야.”괜히 긴장됐다.친구가 한입 먹었다.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맛있네.”그 짧은 한마디가이상하게 기분 좋았다.그날 오후에는 처음 보는 손님 몇 명이 더 왔다.다음 날에는 또 다른 얼굴들이 보였다.누군가는 볼로네제를 먹었고,누군가는 알프레도를 주문했다.어떤 사람은 혼자 왔다가다음에는 동료와 함께 왔다.작은 서비스 창을 통해사람들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알베르또는 손님들과 금세 친해졌다.“지난번보다 치즈..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3화 — 첫 번째 한 그릇

“여기 오늘 오픈한 곳 맞죠?”서비스 창 앞에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늘이 첫날이에요.”여자는 메뉴판을 잠시 바라봤다.“그럼… 볼로네제 하나 주세요.”알베르또가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첫 주문이었다.나는 파스타를 팬에 넣고볼로네제를 천천히 섞었다.소스를 넉넉히 담고마지막에 파르메산을 갈아 올렸다.여자는 음식을 받아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한입.그리고 또 한입.나는 괜히 그쪽이 신경 쓰였다.알베르또가 말했다.“보고 있네.”“안 보고 있어요.”“계속 보는데.”그때 여자가 우리 쪽으로 돌아봤다.“이거 직접 만드셨어요?”나는 조금 긴장해서 대답했다.“네.”여자가 웃었다.“맛있어요.”그제야 숨을 놓았다.그녀는 다시 한입 먹었다.그러다 천천히 말했다.“우리 이모 생각이 나네요.”알베르또..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2화 — 내일, 문을 연다

트레일러 수리가 거의 끝났다.낡은 흔적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이제 제법 가게처럼 보였다.나는 서비스 창에 메뉴판을 붙였다.BOLOGNESEALFREDO알베르또가 옆에서 바라봤다.오늘은 얇은 하늘색 반팔 셔츠에 밝은 베이지색 바지였다.“두 개뿐이네.”“처음이니까요.”“좋아. 심플하고.”이번에는 쉽게 동의했다.볼로네제 냄비에서는소스가 천천히 끓고 있었다.노마의 레시피에서 시작했지만몇 번 만들면서 조금씩 달라진 맛이었다.알베르또가 한 숟가락 먹었다.“엄마 거랑 다르네.”나는 그를 바라봤다.그가 다시 한입 먹었다.“근데 이게 더 좋아.”“정말요?”“응.”잠시 후 그가 덧붙였다.“엄마 것도 좋고, 이것도 좋고.”나는 웃었다.그 말이면 충분했다.밖으로 나가자 새 간판이 보였다.AMORE DI PASTA“결국 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