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소설

제3화 — 포카치아는 없어요

heave_ho 2026. 8. 11. 03:27

 

다음 날 오후 세 시 십 분.

베이커리 문이 열렸다.

딸랑.

보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후 세 시쯤이면 손님이 뜸해졌다.

아침부터 이어진 바쁜 시간이 끝나고, 진열대에는 팔리지 않은 빵 몇 개와 쿠키, 크루아상 두 개가 남아 있었다.

보영은 작업대에서 밀가루 봉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포카치아 있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보영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알베르또였다.

어제와 같은 갈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물론 실내에서.

보영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없어요.”

알베르또의 표정이 굳었다.

“없어요?”

“네.”

“어제는 오늘 만든다고 했잖아요.”

“제가 언제요?”

“또 만들면 된다고 했잖아요.”

“그게 오늘 만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알베르또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영은 다시 밀가루 봉지를 정리했다.

“내가 일부러 왔는데.”

“제가 오라고 했어요?”

“아니.”

“그럼 됐네요.”

알베르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와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항상 자기가 불리해졌다.

“내일은요?”

“몰라요.”

“모레는?”

“그것도 몰라요.”

“그럼 언제 만들어요?”

보영이 결국 고개를 들었다.

“포카치아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알베르또가 대답하려다 멈췄다.

어제의 빵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베르또는 어깨를 으쓱했다.

“맛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끝이었다.

보영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알베르또는 카운터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커피라도 드릴까요?”

“좋죠.”

“돈 내셔야 돼요.”

“……알아요.”

보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알베르또는 커피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십 분째 그대로 있었다.

보영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십오 분.

아직 있었다.

이십 분.

여전히 있었다.

결국 보영이 물었다.

“일 안 하세요?”

알베르또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사장입니다.”

“어디 사장님이요?”

“카펫 청소 회사.”

보영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조금 의외였다.

“카펫 청소요?”

“왜요?”

“아니에요.”

“지금 실망했죠?”

“제가 왜 실망을 해요?”

“좀 더 멋있는 직업일 줄 알았잖아요.”

보영은 잠시 생각했다.

“아뇨.”

“정말?”

“직업에 멋있는 게 어디 있어요. 자기 일 잘하면 됐지.”

알베르또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카펫 청소가 어때서요. 꼭 필요한 일이잖아요.”

알베르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직업을 들으면 종종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사업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된 다음에야 표정이 달라졌다.

그런데 보영은 묻지 않았다.

직원이 몇 명인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회사가 얼마나 큰지.

그냥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알베르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보영 씨는요?”

“뭐가요?”

“계속 제빵사였어요?”

보영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아뇨.”

“그럼?”

“화학공학 전공했어요.”

알베르또가 커피를 마시다 멈췄다.

“뭐라고요?”

“화학공학.”

알베르또는 보영과 작업대 위의 반죽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왜 빵을 만들어요?”

보영이 눈썹을 올렸다.

“화학공학 전공하면 빵 만들면 안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빵도 화학이에요.”

“빵이?”

보영이 기다렸다는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효모가 당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글루텐 구조가 그 가스를 잡고, 온도에 따라서 발효 속도가 달라지고—”

알베르또가 손을 들었다.

“잠깐.”

“왜요?”

“내가 빵을 먹으러 온 거지 수업 들으러 온 건 아니라서.”

보영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그냥 드세요. 원리를 알려고 하지 말고.”

“먹을 빵이 없다면서요.”

“포카치아가 없다고 했지 빵이 없다고는 안 했어요.”

보영은 진열장에서 작은 치아바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알베르또가 받아들었다.

“서비스?”

“아뇨. 4달러 50센트.”

“…….”

보영이 웃었다.


잠시 후 보영은 직원용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늦은 점심이었다.

그녀는 집에서 가져온 용기를 열었다.

알베르또가 무심코 그쪽을 보았다.

파스타였다.

토마토와 마늘, 올리브오일을 넣은 단순한 스파게티.

알베르또가 물었다.

“그건 직접 만든 거예요?”

보영이 포크를 들다가 그를 바라봤다.

“네.”

“제빵사가 왜 파스타를 먹어요?”

보영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제빵사는 파스타 먹으면 안 돼요?”

“오늘 나 계속 혼나네.”

“이상한 질문만 하니까 그렇죠.”

알베르또가 웃었다.

“파스타 좋아해요?”

보영이 한입 먹었다.

“많이요.”

“얼마나?”

보영은 잠시 생각했다.

“빵 만드는 것만큼.”

“그럼 파스타도 잘 만들어요?”

“제가 먹을 정도는요.”

알베르또는 그녀의 용기를 바라보았다.

“한입 줘봐요.”

보영의 포크가 멈췄다.

“싫어요.”

“왜?”

“제 점심인데요.”

“한입인데.”

“그 한입 때문에 제가 한입 덜 먹잖아요.”

알베르또는 웃었다.

“돈 줄게요.”

“됐어요.”

“5달러.”

“싫어요.”

“10달러.”

보영이 그를 바라봤다.

“남의 점심 한입 먹는데 10달러를 왜 써요?”

알베르또가 씩 웃었다.

“궁금하니까.”

“뭐가요?”

“당신이 만든 파스타 맛.”

보영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끗한 포크 하나를 꺼냈다.

알베르또의 얼굴이 밝아졌다.

보영이 스파게티를 조금 말아 포크에 올렸다.

알베르또에게 내밀었다.

“10달러.”

알베르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받아요?”

“먼저 가격 제시한 건 그쪽인데요.”

알베르또는 지갑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꺼냈다.

보영이 정말 받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잘 먹겠습니다.”

알베르또가 파스타를 먹었다.

보영은 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알베르또가 천천히 씹었다.

이번에는 포카치아처럼 시간이 멈추지는 않았다.

엄마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맛있었다.

아주 단순한 맛이었다.

토마토.

마늘.

올리브오일.

약간의 매운맛.

“어때요?”

보영이 물었다.

알베르또는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한입 더 먹어봐야 알겠는데.”

보영이 바로 용기 뚜껑을 닫았다.

“10달러 더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장사 잘하겠네.”

보영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알베르또의 웃음이 조금 멈췄다.

“뭘?”

“제 음식 파는 거요.”

보영은 닫아놓은 파스타 용기를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곳이면 좋겠어요.”

“빵집?”

“그것도 좋고.”

“파스타?”

보영이 웃었다.

“그것도 좋고.”

“둘 다 하면 되잖아요.”

보영이 고개를 저었다.

“말은 쉽죠.”

“뭐가 어려운데?”

보영은 잠시 생각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었다.

영어도, 서류도, 법도, 돈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했다.

“그냥요.”

보영이 말했다.

“지금은 꿈이에요.”

알베르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꿈이면 하면 되지.”

보영이 그를 바라봤다.

“세상일이 그렇게 쉬워요?”

“어렵게 생각한다고 쉬워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참 단순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단순함이 조금 부러웠다.


알베르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니다.”

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문으로 가다가 멈췄다.

“보영.”

“왜요?”

“내일 포카치아?”

“없어요.”

“아직 내일 안 왔는데 어떻게 알아요?”

“안 만들 거니까요.”

“왜?”

보영이 그를 보며 말했다.

“자꾸 오잖아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그러면 만들 때까지 와야겠네.”

“그러지 마세요.”

“내일 봐요.”

“안 만든다니까요.”

딸랑.

문이 닫혔다.

보영은 유리문 너머로 멀어지는 알베르또를 바라보았다.

갈색 선글라스가 햇빛에 반짝였다.

“참 이상한 사람이네.”

보영은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그러다 작업대 위의 반죽을 보았다.

내일 만들 빵 목록이 적힌 종이가 옆에 놓여 있었다.

바게트.

치아바타.

크루아상.

보영은 펜을 들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맨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Focaccia.

적고 나서 가만히 바라봤다.

“손님이 찾으니까 만드는 거야.”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잣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1 tray.

잠시 생각하다가,

숫자 1에 줄을 그었다.

2 tr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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