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소설

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heave_ho 2026. 8. 10. 15:43

제2화 — 마지막 포카치아

알베르또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도 몰랐다.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어디 사는지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는 것이라고는 딱 세 가지였다.

자기가 고른 선글라스가 별로라고 했다는 것.

자기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산 갈색 선글라스는 그녀가 골라줬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알베르또는 그날 이후 그 선글라스를 자주 썼다.

물론 그녀 때문은 아니었다.

적어도 알베르또는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뒤 오후.

알베르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카펫 청소회사는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들도 있었고, 이제는 알베르또가 모든 현장에 직접 나갈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가끔 현장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날도 오래된 고객의 집에 직접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빵 냄새가 났다.

알베르또가 고개를 돌렸다.

길 건너편에 작은 베이커리가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배가 고팠다.

그리고 빵 냄새가 꽤 괜찮았다.

“커피나 한잔하지.”

그는 차를 세웠다.


문을 여는 순간 작은 종이 울렸다.

따뜻한 공기와 함께 버터와 커피 냄새가 밀려왔다.

크루아상, 치아바타, 바게트, 작은 타르트들이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알베르또는 천천히 진열대를 훑었다.

그때 한쪽에 놓인 포카치아가 눈에 들어왔다.

올리브가 박혀 있고 로즈마리와 굵은 소금이 살짝 뿌려진 포카치아였다.

마지막 한 조각.

알베르또가 손을 뻗었다.

동시에 다른 손도 그 빵을 향해 뻗어왔다.

두 손이 멈췄다.

알베르또가 옆을 보았다.

여자도 그를 보았다.

잠깐의 침묵.

알베르또가 먼저 웃었다.

“이번에도?”

보영이었다.

보영의 눈이 알베르또의 얼굴에서 선글라스로 내려갔다.

갈색 선글라스.

자기가 골라준 것이었다.

“그거 샀네요.”

“누가 골라준 건데요.”

“그래서 후회하세요?”

“아니요. 반응이 좋아요.”

보영이 피식 웃었다.

“다행이네요.”

“당신 덕분입니다.”

“그럼 수수료 주세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얼마면 됩니까?”

“비싸요.”

“얼마나?”

“저 포카치아 정도.”

두 사람은 동시에 빵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알베르또가 손을 뗐다.

“드세요.”

보영도 손을 뗐다.

“아니에요. 드세요.”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뭐가요?”

“먼저 양보했잖아요.”

“그래서 결국 당신이 가져갔잖아요.”

알베르또가 잠시 생각했다.

“그러네요.”

“이번에도 가지세요.”

알베르또가 포카치아를 집었다.

“이렇게 쉽게?”

“빵 하나 가지고 싸울 나이는 지났어요.”

알베르또가 눈썹을 올렸다.

“내 나이 알아요?”

“몰라요.”

“그런데 왜 나이를 얘기해요?”

보영이 그를 한번 쳐다봤다.

“빵 하나 가지고 싸울 만큼 어려 보이지는 않으니까.”

알베르또는 입을 다물었다.

보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빵을 집었다.

“이상하네.”

알베르또가 중얼거렸다.

“뭐가요?”

“당신 만나면 자꾸 내가 늙는 기분이 들어.”

“저 때문은 아닐걸요.”

알베르또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또 안 가르쳐줄 겁니까?”

그때 카운터 안쪽에서 누군가 불렀다.

“보영!”

보영이 돌아보았다.

“네!”

알베르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영.”

보영이 다시 그를 보았다.

“…….”

“보영.”

“한 번 들었으면 됐잖아요.”

“확인하는 겁니다.”

“뭘요?”

“기억하려고.”

보영은 대꾸하지 않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알베르또는 그제야 알았다.

“여기서 일해요?”

“네.”

“제빵사?”

“네.”

알베르또가 손에 든 포카치아를 내려다보았다.

“이것도 당신이 만들었어요?”

보영이 잠깐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건 제가 만들었어요.”

“그래요?”

“왜요?”

알베르또가 포카치아를 들어 보였다.

“먹어보고 평가해도 됩니까?”

보영이 앞치마를 정리하며 말했다.

“돈 내고 드시면 마음대로 하세요.”

“평가가 안 좋으면?”

“다른 빵집 가세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자신 있네요.”

“아뇨.”

보영이 말했다.

“그냥 모든 사람 입맛에 맞출 생각이 없어요.”

그 말이 알베르또는 마음에 들었다.


알베르또는 창가에 앉았다.

커피 한 잔과 포카치아.

그는 별 생각 없이 포카치아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씹었다.

한 번.

두 번.

알베르또의 손이 멈췄다.

바삭한 가장자리.

안쪽의 부드럽고 촉촉한 결.

올리브오일의 향.

로즈마리.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소금 맛.

그 순간이었다.

오래된 문 하나가 갑자기 열린 것 같았다.

알베르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빵 냄새가 먼저였다.

그다음은 햇빛이었다.

오래전 어느 오후.

열려 있던 부엌 창문.

바람에 살짝 흔들리던 하얀 커튼.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따뜻한 빵.

어린 알베르또가 손을 뻗는다.

누군가 그의 손등을 가볍게 때린다.

— 뜨거워. 기다려.

여자의 목소리.

알베르또는 눈을 감았다.

엄마.

노마였다.

그녀는 늘 빵을 손으로 뜯어주었다.

칼로 자르면 되는데도 굳이 손으로 뜯었다.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가운데 부분을 어린 알베르또에게 주었다.

— 먹어봐.

— 뜨거워.

— 그러니까 천천히 먹어.

알베르또는 언제나 천천히 먹지 않았다.

노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웃었다.

그 웃음.

알베르또는 그 웃음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베이커리였다.

창밖으로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커피는 아직 따뜻했다.

손에는 포카치아가 들려 있었다.

알베르또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별로예요?”

목소리가 들렸다.

알베르또가 고개를 들었다.

보영이 서 있었다.

그녀는 빈 접시 몇 개를 들고 있었다.

“아까부터 빵만 보고 있길래요.”

알베르또는 포카치아를 내려다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농담부터 했을 것이다.

맛있다고 하면 전화번호를 주느냐고 물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맛있어요.”

보영이 웃었다.

“다행이네요.”

그녀가 돌아서려 했다.

“보영.”

처음으로 알베르또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까 장난스럽게 불렀던 것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보영이 돌아보았다.

“네?”

“이거…….”

알베르또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떻게 만들어요?”

보영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포카치아요?”

“네.”

“그건 왜요?”

알베르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

“엄마가 생각나서.”

보영의 표정이 달라졌다.

알베르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가 어릴 때 이런 빵을 만들어줬거든요.”

“이탈리아 분이셨어요?”

“네.”

“지금은요?”

알베르또는 잠시 침묵했다.

“안 계세요.”

짧은 말이었다.

보영은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알베르또에게는 조금 의외였다.

사람들은 보통 그다음 질문을 했다.

언제 돌아가셨느냐.

어떻게 돌아가셨느냐.

몇 살이었느냐.

그런데 보영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포카치아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하나 더 만들어드릴게요.”

알베르또가 그녀를 보았다.

“마지막이라면서요.”

“오늘은요.”

“내일은?”

“또 만들면 되죠.”

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

알베르또는 한동안 보영을 바라보았다.

사라진 것은 다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끝난 것은 끝난다.

그래서 그는 지나간 것을 붙잡지 않았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그런데 이 여자는 말했다.

또 만들면 된다고.

보영은 그 말이 알베르또에게 어떤 의미로 닿았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내일도 있어요?”

알베르또가 물었다.

“제가요?”

“포카치아요.”

보영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포카치아를 물어본 거 맞아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익숙한 웃음이 다시 돌아왔다.

“둘 다.”

보영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냥 빵만 만들어드릴게요.”

“몇 시에 오면 됩니까?”

“안 알려드릴 건데요.”

“왜요?”

“제가 만든다고 했지, 당신이 먹을 수 있다고는 안 했어요.”

알베르또가 웃음을 터뜨렸다.

보영도 돌아서면서 아주 조금 웃었다.

그리고 카운터 안으로 사라졌다.

알베르또는 남은 포카치아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천천히 한입 먹었다.

정말 천천히.

엄마가 오래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노마…….”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알베르또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떤 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이 떠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손끝을 통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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