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 두 시.
트레일러 주인은 오지 않았다.
두 시 십 분.
안 왔다.
두 시 이십오 분.
여전히 안 왔다.
나는 트레일러 앞에서 햇빛을 피해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전화해 볼까요?”
알베르또가 휴대폰을 꺼냈다.
“조금 더 기다려봐요.”
“난 기다리는 거 잘 못하는데.”
“알 것 같아요.”
“어떻게?”
“그냥요.”
알베르또가 나를 쳐다봤다.
“요즘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은데.”
나는 웃었다.
“아직 별로 알고 싶지는 않은데요.”
“상처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웃고 있었다.
두 시 삼십 분.
낡은 회색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트레일러 주인이 내렸다.
“Sorry, sorry.”
그는 열쇠 꾸러미를 흔들었다.
“은행 갔다 오느라.”
알베르또가 나를 봤다.
“자, 사장님 오셨습니다.”
“제가 왜 사장님이에요?”
“곧 될 수도 있으니까.”
“안 산다니까요.”
주인이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안 살 거예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알베르또가 웃었다.
“아직 협상 중입니다.”
“누구랑요?”
“당신 자신하고.”
얄미웠다.
트레일러 안은 낮에 보니 더 엉망이었다.
싱크 아래에는 녹이 있었고,
벽 한쪽은 기름때가 눌어붙어 있었다.
냉장고는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하나씩 메모했다.
알베르또는 그런 나를 따라다니며 말했다.
“싱크 교체.”
“네.”
“냉장고.”
“네.”
“벽.”
“청소하면 될 것 같은데요.”
“당신이?”
“네.”
“내가 할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왜요?”
알베르또가 벽을 손가락으로 한번 문질러 보더니 말했다.
“이건 사랑으로도 안 지워질 것 같아.”
나는 웃었다.
“세제로 지우면 돼요.”
“역시 제빵사는 낭만이 없네.”
주인이 가격을 다시 말했다.
어제 들었던 것보다 조금 낮았다.
나는 계산기를 꺼냈다.
수리비.
장비.
허가.
재료.
머릿속에서 숫자가 엉켰다.
알베르또가 옆에서 말했다.
“괜찮은 가격인데.”
“트레일러 가격만 보면요.”
“그렇지.”
“안에 들어갈 돈이 더 많아요.”
“그것도 그렇고.”
나는 그를 봤다.
“오늘은 왜 이렇게 순순히 동의해요?”
“당신이 계산할 때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왜요?”
“무서운 얼굴 하거든.”
나는 웃었다.
“제가요?”
“응. 아주 조금.”
그때 주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보러 오기로 했어요.”
나는 계산기에서 손을 뗐다.
“언제요?”
“오늘 저녁.”
알베르또가 나를 봤다.
나는 알베르또를 봤다.
이상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 산다고 했는데.
주인이 말했다.
“원하면 작은 계약금만 걸어두세요. 이틀 기다려줄게요.”
나는 다시 계산기를 내려다봤다.
“얼마요?”
가격을 들었다.
부담스러운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은 돈이었다.
“생각해 볼게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트레일러에서 내려왔다.
빵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계산했다.
알베르또는 옆에서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열 마디는 했을 사람인데.
그래서 내가 먼저 물었다.
“왜 조용해요?”
“생각 중.”
“무슨 생각?”
“배고프다는 생각.”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오래 걸려요?”
“메뉴까지 생각해야지.”
“뭐 먹고 싶은데요?”
“당신 파스타.”
“또요?”
“맛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시 빵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파스타 물을 올렸다.
그때 알베르또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화면을 보고 잠깐 멈췄다.
“왜 안 받아요?”
“받아야 하나 고민 중.”
“전화 왔으면 받으세요.”
알베르또가 전화를 받았다.
“Ciao.”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파스타를 저었다.
알베르또는 몇 마디를 하더니 말했다.
“오늘?”
잠시 후,
“오늘은 안 돼.”
또 잠시 후,
“아니, 다른 여자랑 있는 건 아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알베르또를 쳐다봤다.
그가 나를 보더니 웃었다.
“정말이야. 일하고 있어.”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인가 들렸다.
알베르또가 말했다.
“사진 보내줄까?”
나는 손을 저었다.
“저 찍지 마세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들었지? 사진 싫대.”
나는 고개를 저으며 파스타를 저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전화가 끝난 뒤 내가 물었다.
“어제 그분이에요?”
“아니.”
“그럼 다른 분?”
“응.”
나는 잠시 생각했다.
“몇 명이라고 했죠?”
알베르또가 나를 쳐다봤다.
“그걸 기억해?”
“두 명이라고 했잖아요.”
“나보다 기억력 좋네.”
“그분들 이름도 기억해요?”
알베르또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웃었다.
“모르는구나.”
“알아.”
“말해봐요.”
“왜 내가 당신한테 시험을 봐야 해?”
“그냥 궁금해서요.”
“파스타나 줘.”
도망갔다.
우리는 카운터 뒤 작은 테이블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알베르또가 물었다.
“트레일러 사고 싶죠?”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모르겠어요.”
“사고 싶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안 사고 싶은 사람은 계산기를 그렇게 오래 안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무서워요.”
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알베르또가 장난을 멈췄다.
“뭐가?”
“돈 쓰는 것도 그렇고… 시작했다가 안 되면 어떡하나 싶고.”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나도 몰라.”
나는 웃었다.
“보통 이럴 때는 잘될 거라고 말하지 않아요?”
“왜? 안 될 수도 있는데.”
너무 태연해서 웃음이 나왔다.
알베르또가 포크로 파스타를 감으며 말했다.
“해보고 망하면 망한 거고.”
“그렇게 간단해요?”
“아니.”
그가 한입 먹었다.
“근데 안 하면 그것도 끝이잖아.”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저녁 여섯 시.
알베르또는 돌아갔다.
나는 혼자 빵집을 정리했다.
그리고 계산대를 닫으려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트레일러 주인이었다.
Deposit received.
I’ll hold it for you until Friday.
나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Deposit?
계약금?
나는 돈을 보낸 적이 없었다.
곧바로 알베르또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응.”
“알베르또 씨.”
“왜요?”
“계약금 냈어요?”
잠깐 조용했다.
“아.”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냈구나.”
“잠깐만. 설명할게.”
“왜요?”
“다른 사람이 산다고 할까 봐.”
“그래서요?”
“이틀만 잡아둔 거야.”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알베르또 씨.”
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건 제 트레일러예요.”
“아직 당신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더 그렇죠.”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처음으로,
알베르또가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내일 얘기해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알베르또였다.
나는 받지 않았다.
두 번째.
받지 않았다.
세 번째.
화면을 보다가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그런데 10초쯤 지나자 문득 생각났다.
계약금이 얼마였지?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알베르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가기도 전에 그가 받았다.
“여보세요?”
나는 말했다.
“얼마 냈어요?”
잠시 정적.
알베르또가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난 거 아니었어요?”
“화났어요.”
“그런데?”
“금액은 알아야죠.”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지 마세요.”
“미안.”
“안 미안하잖아요.”
“응. 조금.”
나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멈췄다.
“알베르또 씨.”
“응?”
“내일 꼭 와요.”
“왜?”
나는 트레일러가 있는 길 건너편을 바라봤다.
“돈 돌려줄 테니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나는 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화가 나서인지,
트레일러 때문인지,
아니면—
내일 그 사람을 또 만나야 해서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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