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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11화 — 그릇 하나의 기억

heave_ho 2026. 8. 12. 10:41

며칠 뒤.

알베르또가 트레일러에 들어오자마자
종이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선물.”

“저한테요?”

“아니. 볼로네제한테.”

봉투 안에는 작은 그릇 세 개가 들어 있었다.

파란색 하나.

갈색 하나.

꽃무늬 하나.

나는 그를 쳐다봤다.

“이게 뭐예요?”

“엄마가 쓰던 그릇이 이런 거였던 것 같아서.”

“그래서 세 개를 샀어요?”

“기억이 안 나니까.”

당당했다.


나는 꽃무늬 그릇을 들었다.

“이거?”

“아닌 것 같아.”

파란색.

“이건요?”

“너무 파래.”

“파란 그릇이니까요.”

“엄마 건 덜 파랬어.”

나는 마지막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냥 기억날 때까지 기다릴까요?”

알베르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우리 늙어.”


우리는 다시 노마의 노트를 펼쳤다.

Ragù alla Bolognese.

이번에는 양을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다.

쇠고기를 볶고,

잘게 썬 양파와 당근, 샐러리를 넣었다.

와인을 붓자
익숙한 향이 트레일러 안에 퍼졌다.

알베르또가 갑자기 말했다.

“잠깐.”

“왜요?”

그가 냄비 가까이 다가왔다.

“샐러리.”

“네.”

“엄마가 이거 자를 때 엄청 작게 잘랐어.”

“얼마나 작게요?”

알베르또가 손가락으로 아주 작은 크기를 만들었다.

“거의 안 보이게.”

나는 웃었다.

“이제야 쓸 만한 기억을 하네요.”

“나 원래 쓸 만한 사람이야.”

“그건 좀 더 지켜보고요.”


소스는 천천히 끓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자

색이 점점 깊어졌다.

알베르또가 냄비를 보며 말했다.

“이 냄새.”

나는 그를 봤다.

“이번엔 확실해요?”

“응.”

그는 웃지 않았다.

“집 냄새야.”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냄비를 다시 바라봤다.


파스타에 볼로네제를 올렸다.

알베르또가 한입 먹었다.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때요?”

또 한입.

“알베르또 씨?”

그가 나를 봤다.

“가까워.”

“정말요?”

“응.”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나요?”

알베르또가 잠시 생각했다.

“한 80퍼센트.”

“나머지 20퍼센트는요?”

“엄마.”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알베르또가 웃었다.

“그건 못 넣잖아.”

“못 넣죠.”

“그러니까 80퍼센트면 꽤 잘한 거야.”


그때 알베르또가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

“왜요?”

“그릇 생각났어.”

“정말요?”

“손잡이가 있었어.”

“컵 아니었어요?”

“컵 같은 그릇.”

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지금 생각났으니까.”

“어디 있어요?”

알베르또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모르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알베르또였다.


그날 두 번째 볼로네제는
노마의 맛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보다 가까워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알베르또는 레시피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릇도 기억하지 못했고,

정확한 양은 더더욱 몰랐다.

그런데 냄새가 나고,

맛을 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자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샐러리를 자르던 엄마의 손.

오래 끓던 냄비.

그리고—

집 냄새.

어쩌면 기억은 머릿속에만 남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떤 기억은
혀끝에 남고,

어떤 기억은
냄새 속에서 우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