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
트레일러에 도착했는데
알베르또가 먼저 와 있었다.
오늘 그는 밝은 살구빛 니트 폴로에 아이보리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오늘 그 옷 입고 요리하게요?”
“왜? 예쁘잖아.”
“볼로네제 튀면 안 빠져요.”
알베르또가 자기 옷을 내려다봤다.
“…앞치마 있어?”
나는 웃었다.
작업대 위에 노트를 펼쳤다.
Le cose che mi hanno salvata.
나를 살린 것들.
오늘 만들어볼 음식은 볼로네제였다.
알베르또가 이탈리아어를 읽었다.
“고기 한 그릇.”
“한 그릇?”
“응.”
“어떤 그릇인데요?”
“그릇.”
나는 그를 쳐다봤다.
“그릇마다 크기가 다르잖아요.”
“엄마한테는 그릇이 하나였나 보지.”
말은 참 쉽게 한다.
그 뒤도 비슷했다.
잘게 썬 양파 한 그릇.
당근 반 그릇.
토마토 두 그릇.
와인은 작은 잔 하나.
이번에는 계량컵보다 더 어려웠다.
“노마 씨가 쓰던 그릇 기억나요?”
알베르또가 잠시 생각했다.
“하얀색이었던 것 같은데.”
“크기는요?”
“예뻤어.”
“크기요.”
“그건 모르겠어.”
역시.
어쩔 수 없이 내가 양을 정했다.
고기를 볶고
양파와 당근을 넣었다.
와인이 날아가자 토마토를 넣고
천천히 끓였다.
한참 뒤,
트레일러 안에 진한 냄새가 퍼졌다.
알베르또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왜요?”
그가 냄비를 바라봤다.
“이 냄새는 기억나.”
이번에는 ‘아마’라고 하지 않았다.
완성된 볼로네제를 파스타에 올렸다.
알베르또가 한입 먹었다.
나는 기다렸다.
“어때요?”
“맛있어.”
“그런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 거 아니야.”
“뭐가 달라요?”
“모르겠어.”
“그럼 어떻게 고쳐요?”
알베르또가 한입 더 먹었다.
“다시 만들면 되지.”
“누가요?”
“우리.”
나는 그를 봤다.
이번에는 ‘당신’이라고 하지 않았다.
노트를 다시 보다가
페이지 아래의 작은 문장을 발견했다.
Quando non riuscivo a mangiare, lui preparava questo per me.
“이건 뭐라고 쓰여 있어요?”
알베르또가 읽었다.
“내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때…
그가 이것을 만들어주었다.”
“그가 누구예요?”
알베르또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아버지?”
“아닌 것 같아.”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엄마 살아 있을 때는
이런 걸 물어볼 생각도 안 했어.”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알베르또가 남은 볼로네제를 한입 더 먹었다.
“그래도 맛있어.”
“엄마 거 아니라면서요.”
“다르다고 맛없는 건 아니잖아.”
나는 치즈를 들었다.
“얼마나?”
“많이.”
“그건 기억 잘하네요.”
“중요한 건 잘 기억해.”
나는 웃었다.
그날 우리는
노마의 볼로네제를 찾지 못했다.
대신 두 가지를 찾았다.
노마가 사용했던 이름 모를 그릇.
그리고 먹지 못하던 어린 노마에게
볼로네제를 만들어주었던 이름 모를 사람.
우리는 아직 몰랐다.
그 오래된 그릇 하나와
그 사람의 이야기가
훗날 우리 트레일러의
가장 중요한 맛을 만들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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