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제9화 — 열지 않은 상자
오후 두 시.
나는 알베르또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저 왔어요.”
“벌써?”
“두 시예요.”
잠깐 조용했다.
“아.”
“잊었죠?”
“아니.”
“그럼요?”
“샤워를 아직 안 했어.”
나는 웃었다.
“그게 잊은 거예요.”
“십 분.”
십오 분 뒤 문이 열렸다.
오늘 알베르또는 흰 티셔츠 위에 짙은 초록색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는 아직 조금 젖어 있었다.
“십 분이라면서요.”
“옷 고르느라.”
“상자 찾는데 옷도 골라야 해요?”
“집에서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지.”
그건 알베르또다운 대답이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책.
겨울옷.
오래된 접시.
사진.
세 번째 상자를 뒤지다가 알베르또가 사진 한 장을 들었다.
“이거 봐.”
“지금 사진 볼 때 아니에요.”
“나 스무 살 때야.”
나는 슬쩍 봤다.
“잘생겼네요.”
알베르또가 바로 물었다.
“지금은?”
나는 다음 상자를 열었다.
“이거나 찾으세요.”
“왜 과거형으로만 칭찬하지?”
나는 웃었다.
다음 상자에서는 꽃무늬 앞치마가 나왔다.
알베르또의 손이 멈췄다.
“엄마 거야.”
낡았지만 깨끗하게 접혀 있었다.
“예쁘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다시 접어 상자에 넣었다.
조금 너무 빨리.
그 아래에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부엌에 서 있는 여자.
얼굴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한 손에는 나무주걱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린 알베르또가 서 있었다.
“어머니예요?”
“응. 노마.”
“닮았어요.”
“내가?”
“네.”
알베르또가 사진을 잠시 바라봤다.
“엄마가 더 예뻤어.”
이번에는 농담하지 않았다.
창고 가장 안쪽에 작은 상자 하나가 있었다.
테이프가 여러 겹 붙어 있었다.
“저건요?”
알베르또가 한참 상자를 바라봤다.
“엄마 물건.”
“그럼 저기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 넣어둔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고.”
“그 뒤로 안 열어봤어요?”
“응.”
짧은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알베르또가 말했다.
“배 안 고파?”
“갑자기요?”
“난 배고픈데.”
나는 상자에서 손을 뗐다.
“그럼 밥부터 먹어요.”
알베르또가 나를 봤다.
“안 열어?”
“알베르또 씨 상자잖아요.”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요.”
“그런데?”
“궁금하다고 다 열어봐야 해요?”
알베르또는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사 와 바닥에 앉아 먹었다.
알베르또는 트레일러 이야기를 했다.
페인트.
조명.
간판.
메뉴.
그러다가 갑자기 어젯밤 만난 여자 이야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들었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가끔 작은 상자로 향했다.
샌드위치를 다 먹었을 때였다.
알베르또가 갑자기 일어났다.
“가위 있어?”
나는 아무 말 없이 가위를 건넸다.
그가 상자 앞에 앉았다.
테이프를 잘랐다.
한 겹.
두 겹.
상자가 열렸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사진.
편지.
작은 접시.
그리고 맨 아래—
낡은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알베르또의 손이 멈췄다.
“이거야.”
노트 표지는 오래되어 색이 바래 있었다.
기름 얼룩도 있었고
밀가루가 눌어붙은 흔적도 있었다.
그런데 표지 한가운데
작은 이탈리아어 문장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Le cose che mi hanno salvata
나는 읽을 수 없었다.
“여기 뭐라고 쓰여 있어요?”
알베르또가 노트를 바라봤다.
“나를 살린 것들.”
나는 다시 표지를 봤다.
“레시피 노트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제목이 그래요?”
알베르또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엄마가 좀 감성적이었어.”
나는 웃지 않았다.
왠지 그 말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알베르또가 첫 장을 넘겼다.
페이지마다 노마의 손글씨가 가득했다.
음식 이름.
재료.
작은 메모.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확한 양이 없는 것이 많았다.
“여기 뭐라고 써 있어요?”
알베르또가 읽었다.
“밀가루… 필요한 만큼.”
“얼마나요?”
“필요한 만큼.”
“그러니까 몇 그램이요?”
“안 써 있어.”
다음 줄.
“올리브오일 조금.”
“조금이 얼마예요?”
“조금.”
나는 노트를 바라봤다.
“이게 레시피예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엄마한테는.”
그가 몇 장을 더 넘겼다.
그러다 손이 멈췄다.
페이지 구석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Ad Alberto piace con tanto formaggio.
“그건 뭐예요?”
알베르또가 피식 웃었다.
“알베르또는 치즈를 많이 넣은 걸 좋아한다.”
나도 웃었다.
“지금도 그렇잖아요.”
“그러게.”
그는 다시 그 문장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알베르또가 노트를 덮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볼래.”
“그래요.”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노트를 상자에 넣으려는데
알베르또가 손을 뻗었다.
“아니.”
그가 노트를 집었다.
“이건 가져가자.”
“어디로요?”
“트레일러.”
집을 나서며 내가 물었다.
“뭐부터 만들어 볼까요?”
“당신이 골라.”
“왜 제가요?”
“당신이 요리 잘하잖아.”
“알베르또 씨도 같이 해야죠.”
“나는 맛을 기억하니까.”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말은 맞았다.
나는 노마의 글을 읽을 수 없었고,
알베르또는 요리를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나는 만들 수 있었고,
알베르또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둘 다 부족했다.
집을 나설 때
알베르또의 손에는 낡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Le cose che mi hanno salvata.
나를 살린 것들.
그때의 우리는
그 제목이 왜 붙었는지 몰랐다.
노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그 음식들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도.
그리고 그 노트가 훗날
또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될지도.
그날 우리는 그저,
오랫동안 닫혀 있던 상자 하나를 열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