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레시피에 없었다 제6화 — 이름을 기억하는 법
다음 날 아침,
나는 트레일러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에도 한참 생각했지만
아직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빵을 만들었다.
생각이 많을 때는
반죽이 제일 좋다.
밀가루는 말을 걸지 않고,
버터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레시피대로 하면
대부분 예상한 결과가 나온다.
사람하고는 다르다.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때
문이 열렸다.
딸랑.
알베르또였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그는 카운터에 오더니
한참 나를 보았다.
“왜요?”
“뭔가 다른데.”
나는 내 옷을 내려다봤다.
“뭐가요?”
“머리?”
“어제도 이 머리였어요.”
“안경?”
“원래 쓰는데요.”
“그럼…”
그가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나는 기다려주었다.
한참 뒤 그가 말했다.
“립스틱?”
“안 발랐어요.”
“아.”
나는 웃었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거죠?”
알베르또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들켰네.”
그는 의자에 앉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커피 하나 줄래요?”
“네.”
“그리고 어제 먹었던 빵.”
“포카치아요?”
“그거 말고.”
“치아바타?”
“아니.”
“크루아상?”
“아니.”
나는 한참 생각했다.
“무슨 모양이었어요?”
알베르또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이만했고.”
“네.”
“위에 뭐가 있었고.”
“뭐가요?”
“그걸 모르겠어.”
나는 웃음을 참았다.
“맛은요?”
“맛있었지.”
“그건 도움이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당신이 찾아줘야지.”
나는 결국 진열대를 하나씩 가리켰다.
세 번째에서 그가 손뼉을 쳤다.
“저거.”
“시나몬 롤이요?”
“맞아.”
나는 웃었다.
“어제도 이름 알려드렸는데.”
“내 머리는 중요한 것만 기억해.”
“시나몬 롤은 안 중요했어요?”
“맛은 중요했어. 이름이 안 중요했지.”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베르또가 화면을 봤다.
“아.”
짧게 중얼거렸다.
전화를 받았다.
“응.”
잠시 듣더니 웃었다.
“아니, 안 잊었어.”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다가
조금 웃었다.
알베르또가 나를 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여자 목소리가 조금 들렸다.
알베르또가 말했다.
“오늘 저녁 맞지?”
잠시 정적.
“오늘 아니야?”
그의 얼굴이 멈췄다.
“아… 어제였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알베르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검지를 입술에 댔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 정말 미안해.”
잠시 듣더니,
“오늘은?”
또 정적.
이번에는 알베르또가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뗐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제법 컸다.
나는 못 들은 척 빵을 정리했다.
조금 뒤 전화가 끊겼다.
알베르또가 한숨을 쉬었다.
“화났어요?”
내가 물었다.
“아주.”
“약속을 잊었으니까요.”
“날짜를 하루 잘못 기억한 것뿐이야.”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게 약속을 잊은 거 아닌가요?”
알베르또가 잠깐 생각했다.
“말을 그렇게 하면 그렇네.”
나는 시나몬 롤을 접시에 올려주었다.
“사과하면 되죠.”
“했잖아.”
“그럼 됐네요.”
그는 시나몬 롤을 한입 먹었다.
잠시 후 말했다.
“안 됐대.”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당신은 참 간단하네.”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달라져요?”
그가 나를 잠시 바라봤다.
“가끔 당신이 더 이상한 사람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들어요.”
잠시 조용했다.
그러다 알베르또가 말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비었네.”
나는 계산대를 닦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쉬세요.”
“다른 사람 만나도 되고.”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되고요.”
“반응이 그것뿐이에요?”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데요?”
알베르또는 웃었다.
“보통은 조금 놀라던데.”
나는 그제야 그를 봤다.
“왜 놀라요?”
“한 번에 여러 사람 만난다고 하면.”
나는 잠깐 생각했다.
“몇 명인데요?”
이번에는 알베르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먼저 물어봐?”
“네.”
“두 명.”
잠시 있다가 덧붙였다.
“아마.”
“아마?”
“한 명은 요즘 연락이 없어서.”
“그럼 두 명이 아닐 수도 있네요.”
알베르또가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듣는 사람 처음 봐.”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이름 안 헷갈려요?”
그가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
“가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왜 역시인데?”
“아까 시나몬 롤 이름도 기억 못 했잖아요.”
알베르또가 한동안 나를 보더니
크게 웃었다.
나는 알베르또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쁜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적어도 숨기지는 않았다.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이야기도
아주 날씨 이야기처럼 했다.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나는 그런 방식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해야 하나 싶었다.
내 일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나는
연애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연애는 더더욱.
알베르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어디를요?”
“트레일러.”
나는 그를 바라봤다.
“왜요?”
“어제 말했잖아. 주인이 오늘 온다고.”
“오늘이었어요?”
알베르또가 멈췄다.
“오늘 아니었나?”
우리는 동시에 휴대폰을 봤다.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일이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베르또가 말했다.
“웃지 마.”
“안 웃으려고 했어요.”
“지금 웃고 있잖아.”
“미안해요.”
“진심이 아닌데.”
“맞아요.”
우리는 한참 웃었다.
잠시 뒤 알베르또가 물었다.
“그럼 오늘 뭐 해요?”
“일하죠.”
“끝나고.”
“집에 가요.”
“저녁 먹을래요?”
“왜요?”
“오늘 약속이 없어졌으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오늘은 좀 피곤해요.”
“그럼 내일.”
“내일은 트레일러 보러 가잖아요.”
“그게 데이트지.”
나는 웃었다.
“그건 데이트 아니에요.”
“두 사람이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 밥 먹으면 데이트 아닌가?”
“트레일러 보러 가는 거잖아요.”
“그럼 트레일러 데이트.”
“그런 말도 있어요?”
“지금 만들었어.”
알베르또는 그런 사람이었다.
없는 말도 있는 것처럼 말하면
이상하게 그럴듯했다.
그가 나간 뒤
나는 남은 시나몬 롤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알베르또는 여러 여자와 만난다.
그 여자들은 그걸 다 알고 있을까.
아마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사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한 건—
내가 그 사람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내일 트레일러를 보러 갈 생각에
조금 기대가 된다는 것이었다.
알베르또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트레일러 때문이었다.
정말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